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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읽어보기

[현대시] <오렌지> 본질에 닿지 못하는 위험한 세상

by domangbook 2024. 8. 26.

25년도 수능완성 실전 모의고사에 신동집 시인의 <오렌지> 라는 작품이 수록되었습니다. 

2020년도 수능특강에도 실렸던 작품이죠. 

이상 시인의 <거울>과 함께 수록되었는데요, <거울>도 참 좋은 시죠. 다음에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렌지를 먹은 지가 얼마나 오랜지.. 같은 언어유희로만 오렌지를 알아왔던 저에게

<오렌지>라는 시는 같은 사물을 봐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작은 반성을 심어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시니 함께 천천히 읽어봅시다. 

뒤에는 개인적인 해석에 대한 짧은 논평도 곁들여보았습니다. 


 

1. 오렌지 - 신동집 

 

  • 주제: 오렌지를 통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고찰

오렌지 신동집
포들한 껍질과 찹잘한 속살

 

<1연>

있는 그대로의 상태의 오렌지와 화자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오렌지와 나는 동등한 상태에 있죠.

 

<2연>

포들한 껍질을 벗긴 오렌지는 문제가 됩니다. 

찹잘한 속살도 벗길 수는 있지만, 그런 오렌지는 마땅히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문제가 되다의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문제'의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껍질을 벗기는 오렌지, 속살을 까는 오렌지. 그런 먹기 위한 오렌지만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오렌지라는 것이죠. 

 

<3연>

껍질은 벗기면 오렌지는 이전의 오렌지와 달라집니다. 

따라서 물리적으로는 껍질을 벗길 수 있지만 오렌지에 손을 대어서는 안됩니다.

 

<4연>

위험한 상태에 놓인 화자와 오렌지.

까서는 안되지만 깔 수 있는 오렌지.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1연에서 나와 오렌지는 동등했습니다. 따라서 오렌지도 화자와 마찬가지의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할 수 있는 그런 위험한 상태. 

 

<5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배암의 또아리는 뱀의 똬리를 길게 늘인 말로, 말 자체를 늘여서 시간이 길게 흘러감을 표현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똬리를 튼 뱀처럼 시간도 빙글빙글 돌며 느리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화자도, 오렌지도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6연>

고뇌가 끝나고 누구인지 모를 그림자가 오렌지의 껍질에 비치고 있습니다. 

'어진' 그림자라는 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갑자기 나와 오렌지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완화됩니다. 

 

*배암의 또아리 뜻: 뱀의 똬리

 

 

 

2. 시 '오렌지' 해석: 존재의 본질에 닿지 못하는 위험한 상태

 

이 시에는 두 가지 오렌지가 나옵니다. 

 

여기 내 눈 앞에, 있는 그대로 놓여있는 더도 덜도 안되는 오렌지 그 자체와

포들한 껍질찹잘한 속살을 깐 그런 오렌지

 

전자의 오렌지오렌지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아직 아무런 가공을 가하지 않은 나와 마주보고 있는 오렌지이죠. 

후자는 속살을 다 드러낸 가공을 마친 오렌지입니다. 

전자의 오렌지가 후자의 오렌지로 이행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죠. 

 

우리가 보통 오렌지를 사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이니까요. 

그것이 우리가 유의미한 '문제'라고 여기는, 우리의 주관이 들어간 세상입니다.

"오렌지는 먹는 음식이야." 같은 주관 말이죠. 

 

 

시 오렌지 해석
오렌지 본질

 

 

하지만 그것이 정말 오렌지의 본질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본질을 한참 벗어나 있는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는 지도 모릅니다. 

오렌지와 화자가 동등하다는 것에 주목해봅시다. 

내가 다른 대상을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나도 그 잘못 해석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서로가 서로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뱀이 똬리를 틀고 있듯 시간은 느리고 긴장감 있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시인은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기 때문이죠.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시인도 그 존재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언젠가 서로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제 입맛대로 해석을 가미해보자면 그 어진 그림자는 사랑을 담은 무관심이 아닐까요. 

 


시 오렌지 해석
오렌지 - 신동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