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 이육사 시인의 <노정기>를 함께 읽어보고, 작가의 고단했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흐릿한 밤과 태풍에서 흔들리는 배 조각이 시인의 삶을 상징했었죠.
시 <노정기> 해설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오늘은 이육사 시인의 대표작,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바로 그 시 <광야>를 읽어봅시다.
22년도 수능특강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에스파와 SM의 '광야'가 있기 전에 이육사의 '광야'가 있었습니다.
함께 읽어보고 이육사 시인이 어째서 일제강점기의 대표시인으로 불리는 지 생각해봅시다.
1. 광야 - 이육사
- 주제: 광야의 역사와 저항의지
<1연>
=> 광야의 시작
까마득한 날이란 아주 먼 옛날이라는 것이죠.
이 때 광야가 생겨났습니다. 빅뱅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닭은 언제 웁니까. 아침에 울죠.
아침은 하루의 시작, 즉 닭이 우는 소리는 시작의 이미지를 청각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광야라는 것은 아주 아주 먼 옛날에 하늘이 생겨날 적에 생겨났다는 겁니다.
<2연>
=> 광야의 특별함
산맥들이 휘달릴 때에도 광야는 불가침구역이었습니다.
여기서 '휘달리다'란 빠르게(휘-) 달리다라는 뜻으로 산맥들이 바다가 보고 싶어 빠르게 달려간다는 의미입니다.
낭만적이죠. 그러한 상황에서도 광야만은 건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광야는 넓게 펼쳐진 평원이죠. 그곳에 산맥이 생기면 더는 광야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어떠한 산맥도 광야만은 침범할 수 없었습니다.
<3연>
=> 오랜 시간이 지나 광야에서 인류 역사가 시작됨
굉음이 아니라 광음. 광음은 빛과 어둠, 즉 세월을 의미합니다.
밤과 낮이 흐르고, 봄부터 겨울이 지난다는 건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죠.
그 때서야 비로소 강물이 열립니다.
진짜 강물이 열렸다는 것은 아니죠. 커다란 물줄기를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아마 이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역사겠죠.
<4연>
=> 눈이 내리는 광야
그리고 지금.
광야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매화는 겨울에도 피는 꽃이죠.
그래서 매화와 눈이 함께 나오면 일반적으로 눈은 고난, 매화는 고난을 이기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그리고 화자는 매화 향기만 아득한 눈 내리는 광야에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겠다고 합니다.
씨앗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노래의 씨앗이니 언젠가 노래가 꽃을 피우겠죠.
<5연>
=> 미래에 노래가 울려펴질 광야
이제 다시 시점은 미래로 옮겨갑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등장해 광야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것도 아주 목이 쉬어라 말입니다.
4연에서 심었던 씨앗이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미래에서 꽃을 피운 겁니다.
2. 시 '광야' 해석: 가난한 노래의 씨는 꽃이 되어 온 광야에 울려퍼지고
시의 제목, '광야'를 떠올려봅시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아무것도 없으니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능성이 생각나지 않나요.
시에서 광야는 우리 민족의 터전입니다.
그 위에서 수많은 왕조가 만들어지고 몰락하며 역사를 만들었죠.
광야는 신성한 공간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현재, 즉 화자의 '현재'인 일제강점기의 광야는 온통 눈으로 덮여있습니다.
산도 범하지 못했던 그 공간이 일제의 탄압에 덮여버린 것이죠.
하지만 이육사 시인은 이 사실을 전하고 슬퍼하는 데에서 시를 끝내지 않습니다.
눈에 덮여도 꽃을 기어이 피워내는 매화처럼 화자는 화자의 의지를 씨앗을 뿌림으로서 표출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의지를 이어갈 초인, 그러니까 미래의 후손을 그립니다.
그 후손은 지금은 눈에 묻혀 부르지 못할 자유와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말이죠.
이육사 시인은 시를 짓고 그저 바라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의열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끝내 감옥에서 옥사하였지만 우리의 땅에, 광야에 자유의 노래가 울려퍼지기를 염원했던 그의 정신은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이육사 시인을 비롯하여 자유를 위해 행동하였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입니다.
이렇게 보니 에스파의 노래가사에 광야가 나온 것이 뭉클하게도 느껴지네요.
결국 우리나라에는 눈이 녹았고, 모두가 목청껏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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