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실시된 2025 9월 모의고사에 출제된 시, 백석 시인의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입니다.
편지 제목과도 같은 이 시는 2025 수능특강에도 이미 수록된 바 있는데요, 연계라는 뜻이죠.
연계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연계공부는 정말 중요합니다.
각설하고, 9월 모의고사에서 함께 출제되었던 문테준 시인의 <살얼음 같은 데 2> 해설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유본예 작가의 수필인 <이문원노종기>와도 함께 출제되었는데 언젠가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를 함께 읽어보고 백석 시인이 편지를 쓴 대상인 정현웅은 누구인지도 알아봅시다.
제목을 보면 그게 가장 궁금하지 않나요?
1.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 - 백석
<1연>
=> 떠나는 '나'의 모습
화자는 어딘가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열거되는 지역명인 부여, 숙신, 발해, 여진, 요, 금에서 화자가 떠나고 있는 곳이 북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흥안령, 음산, 아무우르, 숭가리도 북부에 위치한 자연물들입니다.
그리고 이 떠나는 모습은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동물들을 '배반하고' '속이며'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연>
=> '내'가 떠나는 것을 말리는 이들
화자가 떠나려고 하자 모두가 슬퍼합니다.
자작나무, 이깔나무, 갈대, 장풍, 오로촌, 그리고 쏠론. 이들은 북방의 민족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화자가 떠나는 것을 말리기도 하고 슬퍼하지만 결국 떠난다고 하자 잔치를 열어 보내줍니다.
<3연>
=> 북방을 떠나 현실에 안주한 '나'
화자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큰 감정 기복 없이 떠나옵니다. 북방을 떠나 한반도로 온 것이죠.
그리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합니다. 하이얀 옷, 매끄러운 밥, 단 샘이 있는 삶입니다.
하지만 이 삶은 그리 완벽하지만은 않습니다.
밤에도 아침에도 고난 앞에 머리 숙여야 하죠.
지나가는 사람마다 절을 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화자는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4연>
=> 슬픔에 쫓겨 북방으로 돌아온 '나'
그렇게 길고 긴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아득한 새 옛날에 화자는 북방으로 돌아옵니다.
그것은 아주 슬프고도 괴로운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백석 시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일은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5연>
=> 이전과 달라진 북방의 모습
하지만 너무 긴 시간이 지난 탓일까요.
돌아온 북방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해도 늙고 달도 파리한 낡아버린 과거의 영광만이 남아있습니다.
<6연>
=> 세월이 지나 사라진 북방의 추억
1연과 2연에서 화자가 떠나갈 때 슬퍼하고 배웅해주었던 그 친구들, 형제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화자의 힘의 원천이었던 북방은 이제 없습니다.
세월같이 지나가버린 과거에 화자는 허망해하고 쓸쓸해하며 시가 끝납니다.
2. 시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 해석: 근원을 떠나온 한민족의 회한
참으로 쓸쓸한 시입니다.
떠나온 곳을 다시 돌아갔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 돌아간 곳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시의 분위기는 회한과 후회로 가득하죠.
살짝 변주되어 반복되고 있는 시어들에 주목해볼까요?
1연의 '아득한 옛날'과 4연의 '아득한 새 옛날', 그리고 3연의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와 4연의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입니다.
첫번째는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입니다. 가장 아득한 옛날, 화자는 북방을 떠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아득한 새 옛날, 화자는 다시 북방으로 돌아오죠. 그 이유는 바로 두 번째에 있습니다. 북방을 떠날 당시에는 슬픔도 시름도 느끼지 않았지만 북방으로 돌아왔던 이유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슬픔과 시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커다란 슬픔과 시름은 아마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단순히 백석 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 탄압 하에 있는 우리 민족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럼 이제 북방을 떠나온 화자는 북방을 떠나온 우리 민족을 의미합니다.
역사를 잠시 생각해보면 발해와 고구려 당시 우리 민족의 영토는 북쪽으로 넓게 퍼져있었습니다.
그러다 현재의 한반도가 된 것이죠.
백석 시인은 한민족의 얼, 그러니까 '나'의 사랑과 힘은 북방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을 떠나오면서 우리 민족이 편안한 현실에 안주했고, 갖은 수치에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음에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북방에는 백석 시인이, 그리고 우리 민족이 그리워했던 것은 없습니다.
사랑도 힘도 자연도 이웃도 말이죠.
3. 정현웅과 백석
이 시는 백석 시인이 만주의 신경시, 즉 북방으로 이주했을 때 쓴 시입니다.
실제로 북방에서 정현웅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시였던 것입니다.
백석 시인은 우리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로도 유명한데요, 이 시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 바로 정현웅입니다.
정현웅은 백석의 친구였으며 백석 시인이 집필한 시의 삽화를 그리는 것 외에도 백석 시인의 옆모습을 그려 <문장>에 싣기도 합니다. 둘의 우정이 참 단란하고 보기 좋죠.
백석이 이 시를 쓰며 먼저 만주로 가고, 한국 전쟁 이후 정현웅도 북쪽으로 가게 되며 두 친구는 평양에서 재회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정현웅은 다시 한번 백석 시인의 초상을 그립니다.
한민족의 격변기였던 그 시절, 일제 강점기와 남북전쟁 시기 서로 다른 곳에서 만났던 두 예술가의 인연이 숨겨져 있는 시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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